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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극단 독립극장 40년 기념공연100년을 넘어 다시 희망의 100년을 위해
김수헌 기자 | 승인 2019.05.15 16:03|(1호)

1979년 6월 창단을 시작으로 잊혀져 가는 역사와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일깨우기 위해 달려왔던 극단 독립극장은 일제와 맞서 싸운 한국의 잔다르크 故정정화 여사를 기리는 작품 <달의 목소리>를  4일부터 26일까지 정동 세실극장에서 선보인다.

 

정의, 책임이라는 말이 어지러운 세상을 떠다니고 있다. 책임을 다했을 뿐 잘못은 없다는 사람, 자신의 과오를 다른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람,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책임을 다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정의는 실종되고 책임에 관한 무책임한 말이 궤변처럼 나무하는 시대이다.

중원 땅,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정의롭게 헌신하셨던 분들이 날짜정해 놓고 독립운동을 하지 않으셨 듯이 독립에 관한공연은 특정한 달에만 해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고 365일 언제나 우리에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항일독립투쟁을 축소하고 친일은 숨기며 왜곡된 역사인식을 강요하는 현실 앞에서 故 장정화 여사의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한 연극 <달의 목소리>를 통해 대한민국의 지난날을 회고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 고취와 건전한 역사의식과 진정 정의가 무엇인지 자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달의 목소리>는 ‘나’가 故‘정정화’여사의 회고록을 읽어나가면서 부터 시작된다. 현재의 ‘나’는 역사속의 ‘정정화’로 분하며, 피아노, 첼로와 해금 선율 속에서 영상과 함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재현을 통한 이야기 전달방식을 버리고 일인 배우의 출연 만으로 담담히 관객과 대화를 펼쳐나간다.

 

무대는 사실적으로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과 기호들로서 표현되며, 영상의 활용은 역사를 극적인 판타지로서 포장하는 것이 아닌 역사 그 자체의 사실적 잔혹함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활용하여 역사는 가상이 아닌 진실 된 사실임을 증명한다. 상징의 기호를 통하여 관객은 저마다 스스로 의미를 생산하여 획득할 수 있는 열린 구조의 연극이 되도록 하며 다큐멘터리 기법을 통하여 올바른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인지하도록 유도 할 것이다.

<작품의도 >

암울한 시기 치열한 삶을 살아왔던 이름 한 자락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독립 운동가들과 그 뜨거운 시대의 중심에 있던 정정화의 삶을 소재로 시대와 얽힌 우리 이야기를, 내일이면 역사가 될 오늘을 바라본다.

 

조국광복의 희망을 가족과 함께 품고 독립 운동가들과 함께 꽃피우려 했던 정정화 여사의 일생에는 우리민족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정정화 여사를 오늘 무대로 호명함에는 그의 기록에서 읽혀지는 여백 때문이며 그 여백에 숨겨진 가슴 울렁거리게 하는 힘 때문일지 모른다.

 

정정화의 가슴에서 빛났던 희망의 불씨가 그 시대정신을 잊지 않고 깨어있는 정신으로

역사와 손잡고 미래로 향해 갈 것이다.

 

1998년 <아! 정정화>, 2001년 <치마>, 2005년 <장강일기>로 정정화의 생을 끊임없이 작업해온 지 18년. 2016년, 영상예술과 결합된 실험적 멀티미디어 시공간극으로 만들어질 新 다큐형식의 <달의목소리>는 그녀의 영웅담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닌 그녀를 통해 바로 나와 당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시간이다. 역사는 소리 없이 흘러왔고 흘러가고 있으며 국민의 망각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정정화(鄭靖和, 1900년 8월 3일 ~ 1991년 12월 2일)

한국의 독립운동가, 본명은 정묘희(鄭妙喜)이며 아호는 수당(修堂)이다.

 

한성부에서 태어나 1910년 어린 나이에 김의한과 결혼했다. 남편은 구한말 고위 관료인 김가진의 맏아들이었다.

 

김가진은 1919년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전격 망명했고, 정정화는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1920년 역시 상하이로 망명했다. '연로하신 시아버지를 모셔야한다'는 일념때문이었다.

그녀는 감시가 덜한 여성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역할을 맡아서 중국과 국내를 오가면서 10여년간 자금 모금책, 연락책으로 활동했다. 또한 중국 망명 27년 동안 자신의 가족 뿐 아니라 이동녕, 백범 김구 등 임정요인 및 그 가족들을 돌보며 임시정부의 안 살림꾼으로서 임정 요인들이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였다.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을 조직하여 간부를 맡았고 충칭의 3·1 유치원 교사로도 근무했다. 1943년 대한애국부인회 훈련부장이 되는 등 임시정부를 대표하는 여성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광복 후 인생 행로는 순탄치 않았다. 미군정의 홀대 속에 1946년 개인 자격으로 귀국해야 했고, 오랫동안 임시정부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구가 곧 암살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 중 김의한은 안재홍, 조소앙 등이 납북 되었으며, 남한에 남은 정정화는 부역죄로 투옥되는 등 고초를 치렀다.

저서로는 회고록 《녹두꽃》(1987, 개정판 《장강일기)을 남겼다.

이 회고록을 토대로 연극 《장강일기》와 《치마》, 《아! 정정화》 등 정정화의 일생을 소재로 한 연극이 공연되었다.(극단 독립극단)

198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 받았다.

 

김수헌 기자  webmaster@jyb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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