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미군부대는 화학부대였어요. 그 부대가 칠곡으로 간 거예요." 1954년부터 92년까지 38년간 주한 미군 캠프 머서가 있었던 경기 부천시 오정동 117번지. 63~64년 미 공병단 44공병대대에서 근무했던 스티븐 스탈라드가 "이곳은 화학물질 저장소였고, 부대 안에 화학물질 수백갤런을 묻었다"고 증언한 바로 그곳이다.

미군의 화학물질저장소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경기 부천시 오정구의 캠프 머서 자리. 캠프 머서는 1992년 이전했다

스탈라드의 증언이 알려진 24일 부대 주변에서 만난 인근 주민들은 놀라움과 함께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들은 이날 "이 부대 안에 묻었다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화학물질 수백갤런'은 과연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이들은 "오정동 미군부대는 화학부대였고 이 부대가 칠곡으로 이사갔다"고 입을 모았다.

부대 주변에서 8대째 살며 오정동장을 지낸 민병만씨(74)는 "오정동 미군부대는 김포공항과 10분 거리밖에 안돼 6·25 전쟁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땅을 사서 미군에 준 것"이라면서 "화학부대가 있을 땐 흙으로 담을 쳐 화학물질을 보관했다는 얘길 들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또 "화학부대는 칠곡으로 이사가고, 미군 공병단이 있다가 90년 초에 미군은 다 떠나고 한국군이 이 부대를 차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캠프 머서'가 비무장지대와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화학부대가 칠곡으로 이전했다는 스탈라드의 증언과 일치한다.

오정동 토박이인 김영철씨(59)도 "경북 칠곡에 고엽제를 묻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처럼 이 부대에도 묻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미군이 위험물질을 칠곡까지 가져갔을 리는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캠프 머서는 논과 밭, 야산을 깎아 조성됐다. 캠프 머서에는 미군들이 쓰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군부대 관계자는 "미군들이 사용하던 건물을 대부분 재사용하고 있으며 새로 지은 건물은 몇 동 안된다"고 말했다.

화학물질을 매몰했다는 증언에 충격을 받은 오정동 주민들은 "미군이 위험물질을 묻고 갔다면 이곳의 토양과 지하수도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최병철 오정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캠프 머서에는 흑인과 백인 등 미군들이 많이 드나들었고 주변엔 클럽 등 술집도 많았다. 부대 인근지역 주민들은 90년대 이전까지 모두 지하수를 먹었다"며 "대량의 위험물질이 매몰됐다면 인근 주민들이 자칫 오염수를 마셨을 수도 있는 게 아니냐"고 불안해했다.

그는 "부대 안은 물론 주변에 대해서도 환경조사를 실시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오정동사무소 한 관계자는 "부대 인근 모 종교단체는 지난주까지 지하수를 먹었는데 혹여 오염된 물을 먹지나 않았는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부천시도 오정동 미군부대에 맹독성 물질을 불법 매몰했다는 의혹에 대해 진상 파악에 나섰다.

대구=정환우 기자  wkdrhkdcns1@naver.com

<저작권자 © 자유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