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단장면을 휘감는 단장천과 동천이 만나는 지점이 굽어 보이는 용암산 끝자락. 얼음골 가는 길, 가파른 언덕에 마을 하나가 들어서 있는 곳이 박산마을이다.

예로부터 밤나무가 많아 '밤산'이라고도 하였고 언젠가부터 밤산에서 '박산'으로 불린다. 지명답게 마을 뒷산에는 밤나무가 지천이다.

산세가 반달같이 생겨서 '반월산'이라 부르는 박산마을 뒷산을 배경으로 밤나무와 함께 억새가 많아 '골새'라 부르기도 했다. 오지도 아닌 곳에 오지마을이 산에 안겨 살아가고 있다.

워낙 깎아지른 지형에 마을이 들어서는 바람에 마을을 오르는 길의 경사가 급하다. 그래서 읍내로 나가는 노인들에겐 마을 앞 버스정류장에 나오는 길이 더 힘들어 보인다. 집도 대부분이 돌담을 쌓아 평편하게 만든 후 지어 올렸다.



반동댁이 집 마당에서 막대기로 검은콩 껍데기를 내리치고 있다. 자신의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는 반동댁은 기자라는 소리에 줄곧 최근에 본 드라마 이야기에 푹 빠진다. 채널을 가르쳐 달라는 모단댁의 질문에는 아랑곳않고 지난 줄거리를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 절뚝거리는 주민들

근처 산내면은 사과로 유명하고 단장면은 대추로 유명하지만 이곳 산외면은 농사지을 땅조차 없어 보인다. 척박한 지형 탓에 풍년의 결실은 박하지만 인심만은 후하다.

살림을 잘 모다(모아) 놓고 산다고 이름 지어진 모단댁(83)은 레저 팀의 방문에 한겨울 심심한 입을 달래줄 홍시를 내놓는다. 그의 집은 산 중턱에 있는 집치곤 마당이 넓다. 오래된 사랑방이 궁금해 열어보니 지금은 고인이 된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이 걸려 있다. 집을 지켜줄 것 같아 아직 그대로 놔두었다는 사진은 족히 60년이 넘어 보였다. 예전에 머슴이 살던 방도 보여준다. 모단댁은 심심하던 차에 집안 구석구석 구경을 시켜준다.

모단댁과 함께 반동댁 집을 찾았다. 코앞의 이웃집인데도 한번 오려면 아픈 다리를 이끌고 와야 한다. 박산마을 어르신들은 경사가 급한 산기슭에 있는 이유로 무릎 병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반동댁은 막대기로 검은콩 껍데기를 내리치고 있었다. 반동댁은 자신의 나이도 정확히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예순셋이나 예순넷 정도 될 거야"라며 한두 살 정도 나이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한다.

모단댁과 레저 팀을 반기는 반동댁은 기자라는 소리에 줄곧 드라마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즘 드라마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는 반동댁은 "요새 유선방송에 기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가 있는데…. 어찌나 재밌던지…"라며 드라마 이야기가 끝이 없다. 듣고만 있던 모단댁은 못 본 것이 아쉬웠는지 채널 번호를 계속해서 묻지만 반동댁은 채널은 안 가르쳐 주고 지금까지 있었던 지난 줄거리를 밤새도록 할 모양이다. 갑자기 반동댁은 요즘 눈물을 자주 흘린다고 한다. 자세히 들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까 이야기하던 드라마 때문이란다.

그는 "젊었을 때는 천방지축으로 살았지. 도심에 나가 살았으면 조금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걸…. 요즘은 그것이 조금 후회돼.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도심에 나가 살고 싶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힘들었던 지난 삶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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