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숟가락을 놓는다. '후~'하고 가쁜 한 숨을 내쉬며, 부른 배를 두드린다. 늘 그렇지만 거방진 식사는 포만하고 여유롭다. 밥상을 푸근하게 내려다본다. 먹고 남은 음식들의 '어질러진 자세'가 편안하고 평화롭다. '존재의 잔재들.' 세상의 존재들이 가볍지 않음에야, 그들의 잔재 또한 넓고도 크다.

밥상에도 생각이 존재한다. 그 생각을 담은 풍경 또한 존재한다. 풍경이 말하는 궤적을 좇다보면, 그 풍경 속에 세상의 이치와 우리의 삶이,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밥상의 풍경' 속에서 해가 뜨고 달이 진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스쳐 지나고, 우주의 생과 멸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밥상에도 우주의 운행이 존재하는 것이다.

"일상일생(一床一生), 밥상에도 일생이 있다고 봅니다. 그 좁은 밥상에도 깨끗하던 곳에서 꽃이 피고 수다스럽다가, 거름이 되듯 어질러지고 다시 깨끗해지는, 일상의 괘를 여지없이 보여 주니까요. 그래서 일사일생(一思一生)이 영혼의 울림이라면, 일상일생(一床一生)은 육체의 떨림이라 생각합니다."

사진작가 김홍희. 문예진흥원이 선정한 '한국의 예술가 28인' 중의 한 사람. 그와 함께 기장시장의 '대게하우스'를 찾았다. 주인장이 단골맞이를 반가이 한다. 대게를 좋아하는지 묻자, '제철 음식은 다 좋지 않으냐?' 한다. "대게는 감미가 짙기 때문에 모든 음식, 특히 술과 잘 어울려요." "그렇죠? 와인, 소주, 위스키, 고량주…" "그런데 막걸리하고는 맛있을라나?" 툭 던져놓고, 서로 낄낄거린다.

"인생에서 '좋은 밥상', 즉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행복은 참으로 큽니다. 하나의 맛에도 각기 하나의 생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생에는 많은 맛들이 공존하지요" 그는 런던 피카디리 써커스의 차이나타운에서 먹은 '베이징덕'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세계 곳곳을 '방랑'하며 '좋은 맛'들을 만났지만, '밥상은 밥상일 뿐' 그 곳을 뜨면 곧 잊어버린다고 한다. 맛도 기억처럼 흘러가버리는 것일까? 그에게는 사진만이 시간을 가두어 두는 '만다라의 유리병'인지도 모르겠다.

밥상에 게가 놓인다. 대게 한 마리에 킹크랩 레드 암 놈, 블루 수놈. 세 놈 모두 통통하니 아주 먹음직스럽다. 열심히 게를 파먹다 대뜸 "사진을 왜 찍습니까?" 묻는다. "흐음~ 글쎄요…" 짐짓 심각한척 한다. 그러나 바로 이어 "밥 먹기 위해 찍습니다." 대수롭지 않다는 투다. '먹고 살기 위해서' 라니… 다소 심심하다.

그러나 그 대답의 행간에서 '사진작업은 밥상을 찍는 작업'이라는 말을 건져낸다. 우리 삶의 시종(始終)을 보면, '잘 먹고, 잘 사는 일'로 두루 집약된다. 세상사 알 수 없는 의문에 대한 질문이나, 떠도는 자의 끈임 없는 종교적 자기순례도 '자기만의 밥상받기'의 일례가 아니던가?

게살에 몰입하다보니, 게 껍질 안에 또 다른 게 껍질이 한 꺼풀 들어있다. "허물을 벗는 중이었네요." "미물도 더 크고 성숙한 몸체를 만들기 위해 제 몸을 벗는데…" "사진작업도 마찬가지죠. '게의 허물'처럼 굳어진 자신의 세계를 끊임없이 깨뜨리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자~ 더 큰 예술적 경지를 위하여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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