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배 개인展…4일부터 26일까지 서울 학고재 화랑

“왱왱∼” 섬 바람이 나뭇가지를, 땅을, 바다를 스친다. 바람은 천변만화 양태를 보인다. 하늬바람이 칼바람 되고, 다시 샛바람이다. 바람에 스친 찰나 사물은 비로소 존재를 드러낸다.

섬 바람이 생성한 결이 화면에 형상화되고 스침 소리마저 깃들었다. 제주란 화두를 천착해온 강요배 화백(57)이 돌멩이, 솔가지, 칡넝쿨, 구긴 종이에 물감을 묻혀 캔버스에 쓱쓱 비벼 그린 것이다. 표현과정에도 스침 소리를 녹여낸 셈. “화면 여기저기 스치는 소리에 빨려 들다보니 그림대상인 사물마다 도구를 달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는 담담히 설명한다.

이 작품들이 4∼26일 서울 학고재 화랑에서 선보인다. 4·3항쟁을 다룬 민중미술을 집중 작업한 후 “민중이란 말을 확장한다”며 제주인 삶의 터전으로 시선을 돌린 그, 이번 전시는 변신을 확인시킨 2006년 ‘땅에 스민 시간’전의 연장이자 또 한번의 변화로, 스침이 주제다.

전시작은 지난 가을 문화진흥원이 기획 초청해 마련한 ‘섬빛깔’전에 선보인 18점과 근작인 ‘성산’, ‘겨울팽나무’, ‘배추’ 등 모두 22점이다. 그중 단순함의 절정을 이룬 ‘애월’과 제주 바다를 큰 필치로 그린 ‘광해’, 월식을 그린 ‘홍월’, 자신의 아내를 월궁항아(달에 사는 여신)에 빗대 그린 ‘두꺼비, 토끼, 계수나무, 항아’ 등은 작업 변화상을 잘 대변한다. ‘뒈싸진 바당(뒤집어진 바다)’과 ‘돌하르방’ 등 제주에 뿌리를 둔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것도 있다.

까슬까슬한 필치와 휘익 나른 붓질에 겨우 묻어난 물감자국, 윤곽마저 모호한 색면 덩어리 등 그 특유의 도드라진 재질감은 여전하다. 빠른 필치가 낳은 운동감도 강요배표 그대로다.

섬의 아픈 역사를 정면으로 겨냥했다가 이제 아픔을 고이 간직한 터전으로 옮긴 그의 시선이 변화무쌍하다. 나무와 바람, 달과 햇빛, 땅과 바다에서 역사와 뿌리, 삶과 예술, 존재와 초월을 길어 올리고 있다. 감정이 서린 풍광, 마음으로 찾은 제주 참모습, 시간의 심연을 품은 마음을 통과한 자연…. 지난번 땅에 스민 시간도, 이번에 한층 유동적으로 거듭난 터다

자유방송  shs051@korea.com

<저작권자 © 자유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