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마른 하늘에서 간간히 여우비가 내렸다.

정확한 집계는 아니지만 남대문시장주식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호황시절 이곳을 찾던 사람들의 숫자는 어림잡아 하루 35만 명.

그러나 명절대목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시장 골목 구석구석을 채우는 것은 사람보다는 물건이었다.

상인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을 팔기 위해 손님들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러나 일본인 등 외국관광객을 제외하고서 상인들과 본격적인 흥정을 벌이는 국내인들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조선시대 남대문시장이 생기고서 이런 불황은 처음이라고 봐야지. 500년만의 불황, 그게 농담처럼 들리지 않아."

서울식품 사장 구본충씨(58)의 말은 노련한 장사꾼의 엄살처럼 들리지 않았다. 명절 선물용식재료를 대량으로 파는 이곳의 매출장부 금액란에는 소액단위가 듬성듬성 적혀있을 뿐이었다.

시장 중심에 33m²(10평) 규모의 상점을 하고 있는 구씨는 "대목이라고 하지만 워낙 불경기라 예년에 비해 상품주문량을 절반 이상 줄였다"며 "직장에서 단체로 구입해가는 게 우리들의 수입줄인데, 이런 식으로 가다간 내년이면 닫을 상점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구씨는 "재래시장이 대형마트와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냐"며 "정부에서는 재래시장 상품권으로 경기를 살려본다고 하지만 이게 유통이 제대로 되나? 우리 가게 같은 경우, 하루에 (상품권)2장 받기도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서울식품 인근에 있는 삼익패션타운도 규모는 크지만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지하 5층 지상10층 연면적 21000m²(6400평)에 이르는 삼익패션타운은 총 1500여개의 점포가 입점해 있다.

숙녀복, 아동복, 남성복, 구두, 잡화 등을 파는 이곳은 동대문 밀리오레 등과 경쟁을 하기위해 덩치를 키웠다.

삼익패션타운측은 풍물놀이패까지 불러 지난 28일부터 시작돼 이날 마감되는 한가위맞이 고객감사대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삼익패션타운 관계자는 "장사 안 된다, 안 된다 하면 정말 장사가 안 된다"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빌딩 입구를 채우는 사람들은 쇼핑보다는 사물놀이패의 공연에 더 눈길을 주고 있었다.

불황의 그늘은 좌판을 벌려놓은 영세상인들 쪽에 더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삼익패션타운 귀퉁이에서 견과류와 건어물을 팔고 있던 한 할머니는 이날 아침에 시장에 보따리를 풀고서 손님과 흥정 한번 붙지 못했단다.

"요즘 같아선 우리 같은 사람들 굶어죽기 딱 좋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시장 4번게이트 인근 1.6m²(0.5평) 규모의 공간에 담뱃가게를 차린 박모씨(50·여)는 "시장에 오는 사람들이 예년보다 절반은 줄어든 것 같다"며 "요샌 시장 근처서 무허가로 파는 중국산 면세담배 때문에 그나마 밥줄도 끊어질 형편"이라고 푸념했다.

박씨는 남해 친정에서 올라온 생마늘을 눈물을 훔치며 까고 있었다. 담배수입이 줄어들자 마늘이라도 팔아 어떻게든 살림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다.

제수용품으로 특수를 누릴법한 업소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부친과 함께 40여년 동안 닭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이동씨(58)는 "10년 전만해도 하루에 200~300마리를 팔았지만 요즘은 20마리 팔기도 버겁다"고 말했다.

정어리 같은 생선류를 주로 팔고 있는 김모씨(50·여)는 "가격대와 구입량 모두가 예년에 비해 절반 정도 줄어들었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이곳 상인들 가운데는 젊은축에 속하는 이모씨(47·의류업)는 남대문시장의 미래를 우울하게 그렸다.

이씨는 "외국인들은 관광코스여서 그나마 낫지만 일반인이 차비와 시간을 일부러 들여 이곳을 찾겠느냐"며 "무엇보다 큰 문제는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구매력 있는 젊은이들이 점점 이곳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유행처럼 급작스레 늘어난 고층상가들도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1층은 영업이 좀 되지만 2층만 올라가도 장사가 안된다"며 "상가 공실률(미분양)을 따져보면 불황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남대문 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얘기를 나눈 것에 대해서도 그다지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다.

대통령의 행보는 '보여주기' 용일 뿐, 재래시장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방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동복과 부인복, 액세서리 등 3대 인기품목을 제외하고는 매출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는 것이 이곳 상인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흥정이 붙어야 시장은 사는 법. 하지만 이날 남대문 시장에서 인파가 몰리는 곳은 만두집과 칼국수집 몇 군데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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