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고 있다. 새로운 희망과 기대 속에 어느 해보다 동장군의 기세는 매섭다. CBS 노컷뉴스는 연말을 맞아 세밑이 더욱 춥고 쓸쓸한 이웃의 사연을 전하고 상처를 보듬는 기획시리즈 '2009 낮은 눈으로 세상을 보다' 를 준비했다. 28일은 그 첫 번째로 희망근로 사업이 끝나면서 실업자 처지가 된 이웃들의 때 아닌 '보릿고개'를 보도한다.

취약계층에게 '짭짤한' 일자리를 제공한 '희망근로 사업'이 지난달 말 종료되면서 졸지에 실업자로 전락한 참여자들이 힘겨운 보릿고개를 나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민생안정 대책의 하나로 1조 7천여억원을 들여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25만여개를 만들었다. 임금의 일부는 상품권으로 지급해 재래시장과 영세상점 등 지역경제 활성화도 유도했다.

희망근로 참여자들은 주로 공원이나 도로 환경미화 작업 등 단순한 업무를 맡았다. 노동 강도에 비해 하루 3만 3천원이라는 비교적 짭짤한 수입과 정해진 시간만 근무하면 되는 조건 덕분에 공사장 노동이나 식당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참여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희망근로가 지난달 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되면서 참여자 대부분은 다시 생계가 막막해졌다. 겨울철이라 다른 일자리도 많이 줄어든 터였다.

경기도의 한 보건소에서 희망근로를 했던 30대 여성 A씨는 "날은 추운데 당장 난방비가 걱정"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그녀는 청소나 사무업무를 돕고 매달 80여만원을 받았다. 다섯 식구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아파트 경비원을 하던 아버지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얼마 전 일을 관둬야했고,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언니와 남동생은 병원 신세를 지는 날이 더 많았다. 어머니는 가족들 뒤치다꺼리에 여념이 없어 돈벌이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7년 동안 직장생활도 했지만 A씨는 몇 년 전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고 쫓겨나다시피 직장을 그만뒀다. 이후 새로운 직장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A씨가 희망근로를 마치면서 가족들의 병원비와 약값은 더욱 버거운 짐이 됐다. 6개월을 꼬박 일했지만 순수 근무일수가 180일을 넘지 못해 기대했던 실업수당도 받지 못했다.

A씨는 "희망근로를 하는 동안에는 '희망'을 찾았지만 이제는 생활비부터 걱정"이라며 "내년 초 희망근로를 다시 신청하기 전까지는 어느 해보다 추운 겨울을 나야할 것 같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는 급한 마음에 우선 공공근로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재래시장의 영세상인도 덩달아 형편이 어려워졌다.
희망근로 사업 참여자는 임금의 30~50%를 사용기한이 3개월 이내인 재래시장 상품권으로 지급받았다. 영세상인에게는 그야말로 톡톡한 효자 노릇을 했지만, 희망근로 사업 종료로 최근 들어 상품권은 사실상 종적을 감췄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51년째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서 모(73) 할머니는 "최근 재래시장 상품권을 쓰는 사람들이 뜸해졌다"며 "날이 추워 손님이 줄기도 했지만 희망근로가 끝난 이유도 있을 것"이라며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특히 내년에는 희망근로 사업 예산이 올해의 3분의 1 수준인 5천 700억여원으로 대폭 삭감된다. 일자리는 10만여개에 그치고, 사업기간 역시 6개월에서 4개월로 줄어든다.

또한 정부가 제공하는 희망근로나 공공근로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에 대해 참여를 제한하도록 하는 내용을 관련 공문에 명시화할 계획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희망근로는 취약계층의 생계를 지원하는 동시에 근로의욕을 높이는 목적이 있다"며 "기존에 혜택을 본 일부 참여자들이 양보해 다른 저소득층에게도 기회를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일 낮 기온도 영하권에 머무는 강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하루아침에 실업자 처지가 돼 유난히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희망근로 사업 참여자들. 하지만 눈이 녹고 새 희망이 돋아나는 봄에도 '보릿고개'가 이어질지 모른다는 걱정 탓에 이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자유방송  shs051@korea.com

<저작권자 © 자유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