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3도의 살을 에는 한파가 몰아친 6일 오후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리는 노원구 중계본동 산동네 꼭대기에서 만난 김혜숙(61.여) 씨는 방에 앉아 이불을 덮은 채 한숨을 쉬었다.
지난달 말 '연탄은행'에 도움을 요청해 이달 초 연탄 100여장을 받기로 했지만 4일 기습적으로 내린 폭설로 당분간 연탄 배달이 어렵겠다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
김씨는 눈이 쏟아진 4일부터 저장해 뒀던 연탄이 떨어져 '날 풀리면 갚겠다'며 이웃집에서 빌려 쓰고 있다.
어려운 형편에 돈을 주고 동네 아래쪽 연탄 가게에서 사려고 해도 '빙판길 때문에 배달이 어렵다'고 손사래를 친다며 당혹스러워했다.
김씨는 "연탄 배달을 요구하면 집이 높은데 있어서 장당 150원 정도를 더 받는데 그걸 고려하고 사려고 해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씨는 신부전증에 이은 합병증으로 몸이 불편해 방과 화장실 빼고는 밖에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처지다.
그는 "아들은 직장에서 늦게 돌아오고 나는 몸이 불편하니 한두 장도 아닌 여러장의 연탄을 도저히 사서 집에 들일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홀로 사는 노인과 영세한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인 이 지역 주민은 고지대인 지역 특성상 제설작업 지연과 빙판길로 인한 배달의 어려움에 연탄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주민과 행정기관의 노력에 기본적인 제설은 이뤄진 상태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얼어붙은 가파른 길은 여전했다.
당장 쓸 연탄은 있는 다른 주민들도 김씨와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장병으로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이날 퇴원했다는 조순이(76) 할머니는 "집에 오니 연탄이 보름치인 50여장밖에 남지 않아 미리 연탄은행에 연락했는데 당분간은 배달이 어렵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당장은 괜찮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조 할머니는 찬 바닥을 손으로 쓸어 보이며 "보름간 병원 신세를 지고 집에 오니 보일러가 얼어서 믿을 건 연탄 난로밖에 없는데 이마저 쓸 수 없게 되면 큰일"이라고 걱정했다.
또 다른 주민인 강연적(90) 할머니도 "연탄이 40여장밖에 남지 않았다"며 "어서 날이 풀려서 연탄을 보내줘야 할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강 할머니는 썰렁한 방에 앉아 머플러에 스웨터, 이불로 몸을 감싸고도 "봉사하러 어린 애들도 자주 오는데 미끄러져 다치면 큰일 아니냐. 도와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내가 연탄을 아껴 쓰면 된다"며 오히려 자원봉사자들의 안전을 걱정하기도 했다.
'연탄은행'의 임경아 간사는 "이번주 폭설과 빙판길 때문에 3건의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이 취소됐다"며 "금요일부터 재개할 계획이지만 빨리 얼음이 녹지 않으면 높은 곳에는 연탄을 전달하기가 당분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임 간사는 "연탄을 주로 쓰면서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에게 돈으로 난방비를 지급하는 것은 이렇게 눈이 와서 왕래가 어려우면 무용지물이다. 행정기관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노원구청 관계자는 "난방 연료가 연탄뿐 아니라 석유 등 다양하게 있어 영세민에게 현금 지원을 하고 있다"며 "일일이 부족 상황을 파악하고 직접 배달하기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어 일단 제설작업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방송 shs051@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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