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완충지대’ 없이 마주섰다. 이 대통령이 “정치논리”라고 박 전 대표의 원안 고수 입장을 비난하자, 박 전 대표는 “말뜻을 못 알아듣는다”고 즉각 반박했다. 이름만 거론 안 했지 상대를 정조준했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정면대결의 양상이다.

◇서로를 겨냥한 두 사람=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시·도지사 오찬간담회에서 “무슨 소속에 따라서 그냥 완전히 의견이 뭉쳐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이라며 “너무 정치논리로 가는 데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와 친박 의원들을 직격한 것이다. 그러자 박 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라고 한 것인데 말뜻을 못 알아듣는 것 같다. 그 당시 약속할 때는 얼마나 절박했느냐”고 바로 되받았다. 이 대통령과 친이 주류들이 귀를 막은 채 ‘식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상대에 대한 직접 비난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그 파장은 크다. 두 사람의 회동 가능성을 두고도 박 전 대표는 “달라질 게 있겠느냐”고, 청와대 측에서도 “지금으로선…”이라고 배제하면서 절충 가능성도 닫혔다.

두 사람은 그간 몇차례 부딪혔지만, 퇴로를 완전히 막아놓은 적은 없었다. 지난해 18대 총선 당시 ‘친박 학살 공천’은 당의 책임으로 돌려지며 무마됐고, ‘쇠고기 정국’과 수도권 규제 완화를 놓고 빚어진 신경전에선 이 대통령이 물러섰다. 미디어법 개정안을 둘러싼 대치에선 박 전 대표의 요구를 한나라당이 수용하면서 마무리됐던 터다.

◇왜 이렇게 세게 부딪히나=이 대통령으로선 세종시 수정계획의 백지화는 조기 레임덕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백년대계” “확신을 갖고 있다”고 장담했던 세종시 수정이 무산될 경우 민심과 당심이 흔들리면서 권력의 중심이 박 전 대표로 이동할 수 있다. 집권 3년차인 올해를 “임기 중반을 통과하는 해”로 표현하는 등 퇴임 때까지 국정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고 했던 이 대통령으로선 상정하기 힘든 시나리오다.

박 전 대표에게도 정치명운이 걸린 사안이다. 박 전 대표는 수차례 “당의 존립 문제” “약속을 뒤집으면 더이상 표를 달라고 할 수 없다”며 원안 고수 입장을 밝혀왔다. 그런 만큼 수정안의 통과는 ‘차기대권 1순위’ ‘미래권력’이라는 위상의 위축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원안 고수를 국익에 반한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점도 ‘애국·애족의 박근혜’를 자극하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세종시 전투’를 통해 양측이 세력의 우위를 상대에게 확인시키려는 셈법도 작동하고 있다.

◇세종시 소용돌이에 휩쓸린 여당=자연히 친이계와 친박계 의원들도 수정과 원안의 깃발 아래 똘똘 뭉치는 양상이다. 서로를 향한 발언이 거칠어지거나, 아예 무시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친박계의 현기환 의원은 13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박 전 대표를 ‘제왕적’ ‘해당행위’라고 비난한 친이계들의 행태를 “홍위병 같은 짓”이라고 비난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도 “친이계의 강요된 여론전에 대해선 국민들이 알아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이계는 친박계와의 대화문을 닫은 채 충청권 설득에 주력하고 있다. 정두언·진수희·김용태 의원은 이날 충청도를 찾아 현지 여론을 청취했다. 충청 여론을 바꿔 친박계를 압박한다는 계산이다. 한 의원은 통화에서 “세종시 문제는 이 대통령과 충청도가 풀 문제이며, 박 전 대표는 남이라는 게 충청도 사람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승부는 적당한 선에서 봉합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사실상 양측의 입장을 절충할 중간지대가 없기 때문이다. 세종시 수정안의 실현여부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가려질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결국 분당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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