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6일 대북 라디오 방송인 '열린북한방송'이 "내부 소식통의 첩보에 따르면 화폐 개혁으로 인한 내부 혼란과 천안함 사태 이후 불안해진 남북 관계 때문에 김정일이 쉽게 자리를 비우기 어렵다"라는 소식을 전했다. 당시 국내 주요 언론사들이 "김정일의 방중이 임박했다"라고 일제히 보도한 것과는 정반대의 주장이었다. 결과적으로 열린북한방송의 보도는 적중했다. 실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5월에 이르러서야 중국을 방문했다.

열린북한방송의 놀라운 정보력은 이때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김정일이 톈진을 돌아볼 것이다"라고 보도한 것이다. 실제 김정일 위원장은 방중 기간이던 5월5일 톈진의 공업지대를 시찰했다. 국내 주요 언론사들의 예측은 빗나가고, 영세한 대북 매체의 보도가 적중한 것이다. 국내 대북 매체들의 정보력이 위력을 발휘한 사례는 더 있다. 지난해 11월30일 '데일리NK'와 'NK지식인연대'는 북한의 화폐 개혁을 최초 보도했다. 열린북한방송은 지난해 10월12일, 오는 9월로 예정된 '당대표자회의'를 처음 언급했다. 이런 사례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내 대북 매체의 정보력이 국정원 라인보다 낫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한 대북 매체 관계자는 "최근 통일부 등 관련 정부 기관들이 대북 매체에 자문을 구하는 경우도 꽤 있다"라고 언급했다. 지난 3월29일, 미국 뉴욕타임스에는 국내 대북 매체의 활약에 관한 기사가 1면에 실리기도 했다.

현재 북한 내부 소식을 전하고 있는 국내 대북 매체는 열린북한방송, 데일리NK, 좋은벗들, NK지식인연대, 자유북한방송 등 모두 다섯 곳이다. 대북 매체들이 놀라운 정보력을 뽐낼 수 있었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답은 고효율의 독자적인 정보 라인에서 찾을 수 있다. 열린북한방송의 하태경 대표는 "국내 대북 매체들의 정보 라인 형태는 대체로 비슷하다. 핵심적인 역할은 탈북자 출신으로 구성된 스트링거(stringer; 비상근 통신원)들과 상근 기자들이 맡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제각기 북한 내부에 취재원을 두고 있다. 상당수는 북한 상류층들이나 수재들이 다니는 평양에 있는 대학을 일컫는 이른바 '중앙대학' 출신들로 알려졌다. 그만큼 북한 내부에 대한 정보 접근도가 높다는 이야기이다.

통신원들이 북한 내부 취재원들과 접선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가장 손쉽고 보편적인 루트이다. 현재 북한에는 중국 휴대전화가 많이 들어가 있다. 통신원들은 남한이나 북·중 접경 지역에서 중국 휴대전화를 통해 북한 내부 취재원들과 접선한다. 두 번째는 중국으로 내부 취재원을 불러들여 정보를 입수하는 방법이다. 한 대북 매체 관계자는 "휴대전화 접선보다 위험도가 높지만, 좀 더 양질의 정보를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각 매체들은 직접 접선을 시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최근에는 북·중 국경을 오가며 내부 정보를 팔아넘기는 전문 브로커까지 등장했다. 이들과 중국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라고 밝혔다. 중국 현지에서는 그 밖에도 북한을 오가는 조선족 상인이나 북한 상사원들을 통해 내부 소식을 접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 접선을 통해 첩보가 입수되면 대북 매체는 진위 여부를 판단한다. 하대표는 이 과정에서 "다른 루트를 통한 교차 확인과 내부 취재원의 신용도를 통해 첩보의 진위를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장마당(시장) 사정같이 공개된 정보는 교차 확인이 쉽다. 하지만 김정일과 관련한 고급 정보는 취재원의 신용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열린북한방송 스튜디오에서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고 있다.

물론 내부 접선 과정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전문 스트링거들은 탈북자라는 신분상 위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한 대북 매체 관계자에 따르면, 얼마 전 국내의 한 대북 매체에서 파견된 통신원 한 명이 납북된 사례가 있다고 한다. 대북 매체에서 고급 정보력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스트링거와의 직접적인 접촉은 그래서 무척 힘들었다. 기자는 어렵사리 한 대북 매체의 도움으로 현재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3년차 전문 스트링거 ㄱ씨(남·41)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당초 약속 장소였던 카페에서 칸막이 방이 있는 식당으로 옮길 것을 요청했다. 주변을 몹시 의식하는 눈치였다. 북한에 있을 때 명문 ○○대학을 나와 지금은 당과 내각의 고위급으로 성장한 대학 선후배들과 접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위급 접선이 가능한 이른바 'A급 스트링거'였다.

메이저 언론사들도 가세해 정보 경쟁 가열

ㄱ씨는 처음 탈북자 친목 단체를 통해 이 일을 소개받았다고 한다. 스트링거는 취업이 여의치 않은 탈북자로서, 위험하지만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라고 한다. 북한 내부에 접선이 가능한 인맥만 있다면, 한 번쯤 해볼 만한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명함에는 중국 법인인 '○○무역회사'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이 명함이 가짜라고 했다. '가짜 명함'은 스트링거들이 신분을 숨기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그는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트링거 상당수가 이름과 신분을 숨기고 있다. 심한 경우, 휴대전화 유심 카드를 1주일마다 바꾸는 사람도 있다"라고 전했다.

남한과 접선하고 있는 내부 취재원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북한 당국의 처지에서 이들은 당연히 간첩 혐의자이다. 대북 매체들은 평소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신분을 철저히 보장하고 심각한 내부 단속 기간에는 접선을 자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위험 부담에도 몇 년 사이에 대북 매체는 많이 늘어났다.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통신원 확보 경쟁에 불이 붙고 있다. 특히 북한 내부 고위급과 접선이 가능한 통신원들은 그 표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고급 통신원을 확보하는 문제는 그 매체의 수준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대표는 "얼마 전 국내 매체보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미국 RFA가 국내 한 매체의 상근 기자 2명을 스카우트했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대북 매체 관계자 역시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통신원 확보 경쟁이 점차 가열되고 있다. 일부 메이저 언론사들도 이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들 대북 매체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역사적 산물이다. 지난 냉전기에도 유럽에서 비슷한 성격의 매체들이 활약한 바 있다. 당시 유럽의 매체들은 동구와 서구의 내부 소식을 상호 전달하며 다리 역할을 했다. 훗날 냉전이 끝나고 이들 매체는 정부를 대신해 '정보 전달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대북 매체들도 이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좀 더 지켜보아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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