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차기 경쟁구도가 8·8 개각을 통해 재구성될 상황이다. 40대 김태호 총리의 등장이 재구성을 강하게 추동하는 지점이다. '정권 2인자'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의 특임장관 발탁도 차기 구도의 재편을 견인할 요소다. 박근혜 전 대표가 거의 독주해온 구도에 새로운 유력 후보군이 추가되면서 차기 경쟁 구도의 유동성이 커지고 복잡해진 것이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인사를 통해 겨냥한 주요 타깃이다. 이 대통령은 6·2 지방선거 패배 후 세대교체의 화두를 던지고, 청와대 인사와 개각을 통해 이를 구체화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발탁이 그 예령이었다면, 김태호 경남지사의 총리 지명은 결정판이다. 특히 김 총리 내정자는 정두언 의원 등 친이계 소장파 그룹이 진즉부터 '차세대 리더'로 추동해왔다. 단순 국면전환용 '깜짝 총리'가 아니라, '박근혜 독주'를 견제할 친이계의 유력 후보로 육성하려는 포석이 담겨 있다는 풀이다. 그가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가 강력한 PK(부산·경남) 출신이라는 점도 이런 육성을 뒷받침한 자산이다. 김 내정자가 총리직을 순항하며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키면 친이계, 특히 친이계 소장파를 등에 업고 '박근혜 대항마'로 등장할 수 있다,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도 명실상부한 여권의 실력자로 부상하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이번 개각을 통해 측근인 진수희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는 등 세도 확대했다. 청와대와 정부 개편을 통해 상대적으로 위축됐다는 평가를 받는 이상득 의원의 '형님 권력' 위상을 감안하면 친이계에서 이 내정자의 구심력은 확대될 공산이 크다. 이는 그가 차기 권력구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힘의 확대를 뜻한다. 이 내정자 측 한 인사는 "이 내정자는 매번 킹 메이커만 해야 하느냐"고 했다. '대권 도전'과 '킹 메이커' 양쪽 모두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차기 구도의 유동성이 커지는 것은 박 전 대표로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박 전 대표는 차기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한번도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미래권력'으로 매김되는 배경이다. 하지만 세대교체 바람이 강해질수록 그가 받는 타격이 커질 가능성이 높고, 친이계 잠룡들이 늘어나고 다양해지는 것 역시 위협이 될 수 있다. 실제 대선 경선 국면에서 '박근혜 대항마' 단일화의 승부처를 맞을 수도 있다. 친박계 현기환 의원은 9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세력을 통해서 우리(친이계)가 뭉치면 국민적 지지도가 높은 대선후보도 바꿀 수 있다는 독선과 오만함에 빠지지 않을까 염려를 하게 된다"고 경계했다.

박 전 대표를 추격하던 정몽준 전 대표, 김문수 경기지사, 오세훈 서울시장 등으로선 일단 나쁠 게 없는 상황 전개다. 우선 그들에게 필요한 건 박 전 대표의 독주구도를 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김 총리 내정자와 이 내정자가 이번 입각에서 정치력과 비전을 입증한다면, 그들로서는 내심 친이계 대표주자를 노리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나경원 최고위원과 원희룡 사무총장, 임태희 대통령실장 등 여권의 이른바 '4말5초(40대 말~50대 초)' 차세대 주자들에게도 기회가 생길 수 있다. '40대 총리'로 상징되는 세대교체론이 확산, 2012년 대선에서 키워드가 될 경우 이들의 공간 역시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도 퇴진하지만 이 대통령의 신뢰가 여전히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정운찬 총리,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 체제 속에서 비주류의 새로운 양태를 보여주고 있는 홍준표 최고위원 등 여권의 차기 주자 인재풀은 점점 확대되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