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18일 당·청 및 당·정 관계에 대해 거센 불만을 토로했다. 새 지도부 구성 후 '균형적 당·청관계' '당·청관계 재정립'을 주문했음에도 청와대와 행정부의 일방적 일처리 방식이 심화되고, 당은 '뒷북 대응'만 하기에 급급하다는 판단에서다. 친이, 친박 모두 청와대와 정부의 일처리 방식에 대한 불만과 우려가 쌓여가는 분위기다.

실제 이날 최고·중진연석회의는 청와대와 정부에 대한 성토의 장이었다. 친이계인 정두언 최고위원은 "(새 지도부 뽑은 전당대회가) 한달 지난 지금 당·정관계는 재정립은커녕 거꾸로 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가 당을 의식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흥길 정책위의장도 "당·정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친박계 중진인 이해봉 의원은 "국회 경시, 집권여당 무시 행태가 권위주의 시대로 완전히 회귀했다"고 맹비난했다. '8·8 개각'에 대해선 "국민과의 소통도 아니고, 한나라당과의 소통도 아니고 친이계 간 소통에 불과하다는 게 언론과 국민의 시각이다. 늘 함께 가자고 해놓고 가만히 보면 혼자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이 발끈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청와대·정부가 당과 사전협의없이 민심에 역행하는 일련의 정책들을 발표했고, 그 부작용에 대한 뒷수습을 당이 해야 한다는 피해의식이 깔려 있다. 정 최고위원은 "잘하면 모르겠는데 거의 민심에 역행하는 일을 한다. 인사도 그렇고 발표한 정책도 그렇다"고 지적했다. 실제 청와대가 '젊은 내각'이라고 주장했던 '3기 내각'은 후보자들의 각종 비리가 불거지면서 당에도 부담을 안기고 있다. 정 최고위원이 "장관에 대한 평가를 당에서 실시,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 것도 이런 문제 의식이 반영됐다.

특히 공공요금 인상, 행정고시 폐지안, 통일세 제안, 담뱃값 인상 등 인화성 짙은 정책들이 당과 협의없이 발표된 것이 한나라당을 자극, 격동시킨 모양이다. 정 최고위원은 행정고시 폐지에 대해 "서민 자제에게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치워버린 것으로 보인다. 현대판 음서제도의 부활, 계층 재생산 구조"라며 "학벌, 집안배경, 연줄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어 소수 특권층을 위한 공무원 특채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친박계 중진인 이경재 의원도 "통일세나 행시 폐지안이 의도는 좋을지라도 발표 방식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화나게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론 '이런 식의 국정운영'이라면 차기 총선은 물론 정권 재창출도 어려워진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정 최고위원은 "당·정 관계가 이대로 가서는 한나라당은 우파 진영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 정권 재창출은 점점 멀어진다"고 말했다.

본질적 문제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당·청관계의 재정립은 사실상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한데, '친위 인사'들이 대거 포진한 8·8개각에서 드러나듯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운영 스타일을 바꿀 뜻이 없어 보인다. 안상수 대표는 "(이 대통령과의 정례회동에서) 이런 부분을 심도 있게 논의해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 등의 암묵적 지지를 얻어 당대표로 당선되는 등 '청와대 대리인'으로 불리는 안 대표의 처지와 위상을 감안하면 당·청관계 조정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