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내 주류와 비주류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최근 비주류인 친박(親朴)계 의원들이 청와대와 관련된 야당의 공세를 적극 방어하는 반면, 주류인 친이(親李)계 의원들은 오히려 청와대나 정부 정책 등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일이 자주 생겨서다. 이 때문에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선 "고맙다, 친박아. 서운타, 친이야"란 말이 나온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7일 "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김윤옥 여사의 로비대가설을 대정부질문에서 주장했을 때 친박계 의원들이 앞장서 맞서줬다"며 "직원들과 TV를 보다가 '참 세상 바뀌었다'는 말들을 했다"고 했다. 당시 의석에서 강력 항의한 뒤 질문대에 나와 "영부인을 겨냥한 막가파식 질의"라고 강 의원을 비난한 이는 친박계인 이종혁 의원이었다. 뒤이어 등단해 "강 의원이 그 발언에 어떻게 책임질지 두고 보겠다"고 한 김선동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 비서실 출신의 '핵심 친박'이다. 청와대에선 "친박이 오히려 낫다"는 말들이 나왔다.

지난달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시진핑 (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의 말이라며 "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이라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친박계 주요 멤버인 구상찬 · 윤상현 의원 등이 "외교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한 파렴치한 일", "사과하라"며 나섰다. 이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있는 4대강 사업 에 대해서도 김선동 의원은 "공정률이 내년 6월이면 90%가 된다"며 야당의 예산 삭감 주장을 반박했다.

반면 친이계의 핵심인 정두언 · 정태근 의원 등은 청와대를 직접 비판하거나 핵심 정책을 공격해 청와대측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정두언 의원은 연일 이명박 정부의 핵심 정책인 '감세'의 문제점을 집중 거론했다. 그는 "야당의 '부자감세' 주장을 차기 총선·대선에서 차단하려면 고소득층과 기업에 대한 감세를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경선캠프였던 안국포럼의 핵심멤버인 정태근 의원은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 "사찰 배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난 만큼 재수사를 해야 한다. 재수사를 않으면 특별검사까지 가는 게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주류측의 이 같은 공세에 대해서는 한때 친박계의 좌장이었던 김무성 원내대표까지 나서 "답답하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세금 폭탄'을 바로잡기 위해 내놓았던 감세 공약을 캠프 주역으로 활동했던 이들이 이제 와서 잘못됐다며 반대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한 회의에서 말한 것이다.

양 계파의 입장이 교차되는 듯한 현상은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 동반상승과 무관치 않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지난 8월 독대 이후 두사람 관계가 좋아지면서 양측 지지자들이 교차 지지하면서 올라간 것"이라며 "이런 훈풍이 의원들 사이에서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친이계의 한 핵심의원은 "친이계가 요즘 구심점이 불분명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계속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계파별로 유력 주자가 등장할 경우, 현재와 같은 교차현상 대신 계파별 집중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친박계에는 지금의 화해무드가, 친이계에는 비판적 지지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 냉정한 경쟁구도가 펼쳐지면 원상태로 돌아갈 여지가 많다"고 했다.

자유방송  shs051@korea.com

<저작권자 © 자유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