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12일 예산안 강행 처리와 관련해 “템플 스테이 예산 등 꼭 반영해야 할 예산이 빠졌다. 모든 책임은 제게 있다”며 사퇴했다. 하지만 당 안에선 “정책위의장 사퇴로 마무리 될 문제가 아니다”며, 예산안 단독 처리를 밀어붙인 지도부 사퇴론이 들끓고 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예산안 강행 처리 등으로) 민심이 험악해졌다”며 “고 정책위의장이 사퇴한 것으로 수습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정두언 최고위원도 “당 리더십 공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앞으로 다가올 선거를 생각해보면 안상수 대표체제는 아닐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두 최고위원은 지난 9일 최고위원회에 당의 예산안 조기 강행 처리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불참했다.

초선·소장파 의원들 사이에서도 지도부 쇄신론이 들끓고 있다. 한 서울지역 초선 의원은 “예산안 강행처리 뒤 의원총회에서 안상수 대표가 ‘예산안이 통과되는 것을 보니 한나라당에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며 “정책위의장만 ‘사형’시키고 반전을 꾀하려는 것은 여론과 너무나 동떨어진 해법이다. 당 대표 등 지도부 쇄신이 없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다른 수도권 중진 의원도 “지도부 전체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초선의원은 “보온병 파동 이후 이미 안 대표의 지도력과 권위는 땅에 떨어져 있다. 대표 사퇴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70% 복지’를 내세웠던 안상수 대표는 스스로 약속한 예산이 어떻게 편성되고 있는지 신경쓰지 않은 채 지역구 활동에 몰두한다는 평을 받아왔다. 양육 수당 확대, 템플 스테이 예산 확보, 춘천-속초간 동서고속화철도 예산 등이 누락되자, 뒤늦게 정책위의장과 기획재정부 관리들을 잡도리했다.

원내대책을 총괄하는 김무성 원내대표도 ‘정기국회 회기 내 예산처리’란 자기 명분에만 집착함으로써 의회정치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국민여론 악화 등 국정운영에 큰 부담을 가져온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핵심 당직자는 “취임할 때부터 과감함에 비해 치밀함이 부족한 게 늘 우려스러웠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원내대표 출마때 그와 짝을 이뤘던 고 정책위의장이 사퇴하면서 그가 디딘 자리도 위태로워졌다.

사퇴한 고 정책위의장은 청와대 관심사인 4대강 예산에 치중했다. 당 안에서도 “정책위의장으로서 전문성이 부족했다. (청와대에) 피동적이었다”는 평을 들었다. 당이 약속한 복지나 불교 예산 등은 챙기지 않은 채 자신의 지역구 예산만 400억원 늘린 이주영 예결위원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