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모씨(43·여)는 요즘도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문제집만 보면 속이 답답하다. 지난 6월 생활정보지에서 '다문화가정 상담사' 자격증 정보를 접한 최씨는 곧바로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정부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어 취업이 100% 보장된다"는 말에, 최씨는 교재비 68만원 가운데 우선 34만원을 내고 문제집 5권을 받았다. 두 달 동안 공부한 끝에 학원에서 시행하는 필기시험에 합격했지만 자격증 수령은 포기했다. 학원 측이 "자격증을 받으려면 직무교육비 11만원을 더 내야 한다"며 발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학원이 '취업할 수 있는 곳'이라고 언급한 단체에 전화를 걸어보니 "그런 자격증은 처음 듣는다"는 답만 돌아왔다.

최씨는 "취업도 안된다면서 왜 속였느냐, 환불해달라"고 항의했지만 학원 측은 "우리가 언제 취업된다고 했느냐. 이미 교재를 풀었으니 환불은 안된다"며 거절했다. 오히려 최씨가 미납한 34만원을 내지 않을 경우 채권추심원을 집으로 보내겠다고 압박했다. 자격증도 받지 못한 채 34만원만 더 낸 최씨는 "왜 정부는 이런 민간자격증을 인가해줘서 선량한 서민에게 피해를 주느냐"고 했다.

결혼이민 증가로 다문화가정이 늘면서 다문화가정과 관련된 민간자격증 발급 학원이 난립하고 있다. 민간자격증은 '자격기본법'에 따라 운전면허, 화약취급 등 정부가 정한 주요 분야를 제외하면 학원이나 민간협회에서도 발급할 수 있다.

'다문화가정 상담사' 자격증은 ㅅ센터에서 지난 8월부터 발급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주는 곳은 학원이다. 많은 학원은 '100% 취업이 가능하다'고 유혹해 60만~80만원의 고가에 문제집을 팔아 서민들을 울리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다문화가정 상담사 자격증 관련 신고는 지난 4월 이후 40건에 이른다.

학원들은 취업가능 기관으로 지방자치단체와 전국다문화가족사업지원단, 건강가정지원센터, 이주여성인권센터,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아동상담센터 등을 언급했지만, 이들 기관의 상담사가 되려면 대부분 4년제 대학 사회복지 관련 학과를 졸업해야 한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상담사 가운데 상당수는 석·박사 학위를 갖고 있었다. 민간자격증인 '다문화가정 상담사'만으로는 취업이 불가능한 것이다.

정태원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는 "검증되지 않은 민간자격증을 가지고 취득만 하면 취업할 수 있는 것처럼 광고를 하는 경우 사기죄가 성립된다"고 말했다.

김민아 여성가족부 다문화가족과 사무관은 "다문화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 무조건 자격증만 취득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며 "현행 '자격기본법'상 민간자격증 남발을 막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만큼 이를 제한·관리할 수 있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