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정권, 차기주자와 불협화음

박근혜 전 대표가 차기대선의 화두로 복지를 내세우고 대선용 싱크탱크로 불리는 국가미래연구원까지 발족하자 청와대와 친이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다.

'미래권력'인 박 전 대표의 대선행보가 빨라질수록 '현재권력'인 이명박 대통령의 입지는 좁아지기 때문이다. 역대정권마다 되풀이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불협화음이 이번에도 재연될 조짐이다.

◆"대통령 힘 빠지고 당 분열" = 청와대는 다가오는 2011년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전국 규모의 선거가 없기 때문에 국정에만 힘을 쏟을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이다.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2012년을 앞두고 주요 국정과제를 제대로 마무리 지으면서 '성공한 정권'으로 남겠다는 의욕이 넘친다. 예산안 단독처리라는 무리수를 둔 것도 새해를 깔끔하게 맞고 싶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구상이 '박근혜'란 돌발변수를 만나면서 주춤하는 모습이다. 국민과 정치권, 언론의 시선은 청와대가 아닌 박 전 대표에게 꽂히고 있다. 지지율 30%대를 웃돌면서 박 전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든 정치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겉으론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차기주자가 대선을 대비하는 건 당연하며, 청와대는 국정운영에 매진할 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속내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임기를 겨우 절반 넘겼는데 여권 후보가 움직이는 것은 정치도의상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청와대의 기류는 친이의 입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됐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대권(경쟁)이 조기과열되면 국가적인 리더십의 혼선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친이계 김용태 의원도 "내년 한해는 대통령이나 당에 너무나 중요한 때"라며 "조기 대선국면이 되면 대통령의 힘은 빠지고 당은 사분오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청와대와 친이는 박근혜표 정책을 개발할 국가미래연구원에 이 대통령 자문교수들이 참여한 것에 대해서도 불편한 기색이다. 대통령 외교안보자문단 소속인 연세대 이정민, 한석희 교수가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린 데 대해 한 친이의원은 "벌써 사람까지 빼가는 거냐"고 꼬집었다.



◆박근혜에 섭섭한 청와대 =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충돌은 역대정권마다 반복됐다.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면 미래권력은 스스로의 권력의지를 대중 앞에 표출시키기 시작한다. 반면 미래권력에 눈이 쏠릴수록 권력누수(레임덕)를 빨리 맞게되는 현재권력은 대선정국이 조기점화되는 것을 경계해왔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충돌은 대부분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노태우정부 후반기, 주류인 민정계와 미래권력인 김영삼 후보는 끊임없이 갈등했다. 김영삼정부 시절엔 청와대와 이회창 후보가 대놓고 충돌했다. 김대중정부 말기 청와대는 노무현 후보에 대해 탐탁찮게 여겼다. 노무현 대통령은 차기주자군이었던 고 건·정동영·손학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

박 전 대표의 조기행보 또한 청와대 심기를 건드리면서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미래권력과 현재권력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며 "박 전 대표의 행보가 빨라질수록 청와대의 제동도 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이 핵심의원은 "청와대는 박 전 대표가 (대통령) 임기 내내 도와준 적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섭섭해한다"며 "조기행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눈에 선하다"고 전했다.

친박에선 청와대와 친이가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입장이다. 친박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정책연구에 힘 쏟겠다는 것일 뿐 이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차별을 두겠다는 게 아니다"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