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10일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이라며 사퇴를 요구했다.

현 여권이 대통령이 임명한 고위 공직 후보자에 대해 청문회를 해보지도 않고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한나라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을 열어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감사원장 후보로서 적격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안형환 대변인은 최고위원 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정 후보자는 감사원장으로서 적격성이 없다"며 "정 후보자는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국민 뜻을 따르는 것이자, 이 정부와 대통령을 위하는 것"이라는 결정 사항을 기자들에게 전달했다.

한나라당이 정 후보자를 내친 것은 대통령이 수족처럼 부리던 차관급 수석 비서관 출신을 독립성과 중립성을 핵으로 하는 감사원장 후보에 임명한 데 대한 거부감과 퇴임후 7개월간 월 1억원 가량의 급여를 받은 것이 국민 정서상 맞지 않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당이 대통령의 임명한 감사원장 후보를 거부한 것은 의외의 사태다.

현정부들어 개각때마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후보가 두 세명씩 나오고, 특히 지난 9월에는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은 직격탄을 맞았지만 그 피해는 여당인 한나라당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이번에도 정동기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가깝게는 설민심과 4.27재보선, 길게는 총선과 대선에 미칠 악영향은 거의 재앙적 수준이다.

한나라당이 후보 임명 11일, 인사청문 요청서 국회제출 5일만에 '정동기'를 내친 것은 사안의 폭발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 후보가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전절을 밟을 수 있다는 기류는 이날 최고위원회의 공개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서병수 최고위원이 "대통령 비서를 감사원장 후보로 임명하는 게 정당하냐"고 따졌고, 홍준표 최고위원도 "정부 인사나 정책이 잘못된 것에 대해 바로잡고 고치고 바꾸고 해야만이 역사와 국민앞에 당당한 한나라당이 되는 것"이라고 말해 모종의 결단이 있을 수 있음을 내비쳤다.

감사원장 후보 인사청문회에 참석하게 된 한 여당 의원 보좌관도 "차관급인 민정수석을 한 사람을 3부요인과 맞먹는 감사원장에 임명한게 말이 되냐"고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를 거부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한나라당도 공식적으로 확인한 셈이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 대통령의 국정과 당 장악력이 급속이 떨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레임덕의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