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건설현장 식당(함바집) 비리와 관련, 강희락 전 경찰청장(59)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이에 따라 '함바 게이트'로까지 불리며 확대되던 검찰 수사는 난관에 부딪히게 됐다.

서울동부지법 최석문 영장전담판사는 13일 강 전 청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후 "피의자를 구속해야 할 정도로 혐의사실에 대해 충분한 소명이 이뤄졌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이런 상태에서 피의자를 구속하는 것은 방어권을 부당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최 판사는 이어 "이미 확보된 증거자료와 (브로커) 유상봉씨가 구속돼 있는 점, 피의자가 수사에 임한 태도 등을 고려할 때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집으로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13일 밤 구속영장 기각 후 서울동부지법을 나와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서울동부지검에서 심사결과를 기다리던 강 전 청장은 이날 오후 11시 45분쯤 청사를 나서면서 "사법부의 판단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으로 생각되며 납득되지 않는다"면서 "영장 재청구 여부에 대해서는 추후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여환섭 부장검사)는 지난 10일 강 전 청장을 소환 조사하고, 11일 유상봉씨(65·급식업체 ㅇ사 대표·구속기소)로부터 1억1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강 전 청장은 또 지난해 유씨가 구속되기 전 4000만원을 건네며 해외 도피를 권유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날 법원이 밝힌 영장 기각 사유는 검찰에 적잖은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충분한 소명이 이뤄졌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부분은 강 전 청장에 대한 수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이나 다름없다. 검찰은 그동안 브로커 유씨의 진술과 정황증거 등을 바탕으로 강 전 청장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자신감을 보여왔다. 수사 선상에 오른 인사들 가운데 가장 먼저 출국금지하고 가장 먼저 소환 조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 12일 소환돼 10시간 동안 조사받은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57)에 대해서도 금명간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강 전 청장에 대한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이 전 해경청장에 대한 영장 청구에도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만약 서둘러 영장을 청구했다가 또다시 기각될 경우 검찰 수사가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 해경청장은 유씨에게서 인천 송도지역 공사현장의 식당 운영권을 따는 데 편의를 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총 35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유씨가 2009년 3월 이 전 청장 부임 인사차 집무실을 방문한 날 2000만원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배건기 전 청와대 감찰팀장(53)과 박기륜 전 경기경찰청 2차장(56)에 대해서도 유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구체적 정황증거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로커 유씨는 검찰에서 "지난해 3월 함바집 운영업자로부터 5만원권 뭉치로 총 5000만원을 전달받아 이를 배 전 팀장에게 직접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차장은 지난해 경기청 2청사 집무실에서 두 차례에 걸쳐 유씨로부터 수천만원의 현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은 그러나 "유씨와 만난 적은 있지만 금품을 받은 적은 없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