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낙마 사태로 이명박 대통령의 한나라당 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좋지 않은 듯하다. 26일로 추진하던 당 지도부 청와대 초청 만찬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안상수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들에 대해 불만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3일 "대통령 일정상 26일 만찬은 어려운 것 같다"며 "일단 연기된 것이지만 당분간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만찬은 당·청 고위직들 간의 신년 인사와 새로 지명된 정운천·박성효 최고위원을 축하하기 위해 지난 연말부터 실무자들이 논의해왔던 행사였다.

취소 배경에 대한 청와대측 설명은 "실무자들이 26일로 잠정적인 날짜를 잡았지만 대통령 일정상 그날이 어렵고, 구제역 대책 등 국정 현안도 많아 일단 연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청와대 실무자가 대통령 일정에 대해 사전 승인도 받지 않고 특정 날짜를 당과 합의하기는 어렵다. 이와 관련,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당 전체에 기분이 상한 것이 아니라 상의도 없이 정동기 후보자의 사퇴를 결의하고 발표한 지도부, 그중에서도 안상수 대표에 대해 상당히 불쾌해하고 있다"며 "당과 의원들이야 처한 입장에 따라 반대할 수 있지만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여론몰이 같은 행동을 한 건 무책임했다고 본다"고 전했다. 일부 참모들은 "대통령의 불만은 (당 전체가 아니라 안 대표) 한 사람에게 있다"는 말도 하고 있다. 청와대는 26일 만찬은 취소했지만 27일 예정인 당·정·청 고위 관계자 정책협의회는 예정대로 하기로 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최고위원들은 "대통령 일정 때문에 취소한다는 연락만 받았지, 무슨 일정 때문인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고 했다. 특히 안 대표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앞으로 당·청이 소통을 강화하고 협력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치를 하겠다"며 공개적으로 관계 개선을 언급했는데 청와대의 만찬 취소 통보는 그 직후에 나와 마치 안 대표의 손짓을 청와대가 거부한 듯한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한 최고위원은 "대통령이 당 지도부 얼굴은 당분간 보고 싶지 않다는 뜻 아니겠나. (당·정·청 협의 등을 통해) 국무총리, 대통령실장과만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또 한 여당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처음 (당에서 정동기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대통령이 '안상수 대표가 그런 거냐. 누가 주동했느냐'고도 했다는데 그런 분위기가 반영된 것 같다"라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청와대로서는 당장 문화체육관광부 와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도 있고,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청와대에서 너무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 같다"는 의원들의 반응도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