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는 전국의 전통시장들이 난리다. 기록적인 한파와 물가고, 그리고 구제역 및 조류 인플루엔자(AI)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전통시장의 숨통을 끊는 대형 할인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까지…. 그야말로 눈 온 뒤에 서리 내리는 격이다.

지난 26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 수유시장. 채소 노점상인 김복남 할머니의 한숨이 하늘을 찌른다. “쪽파 1단에 5000원 하던 게 지금은 8000~9000원이야. 흥정도 없어. 설대목, 그거 옛날 얘기야.” 김 할머니는 1시간30분 만에야 겨우 쪽파 1단을 마수걸이했다.

충남 당진의 당진시장 상인 강미옥씨(해성종합수산)는 “하루 15짝 팔리던 꽃게가 요즘은 3~4짝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계속되는 한파와 폭설 때문에 시장으로 향하는 발길이 뚝 끊긴 것도 이유다.

날씨가 이만저만해야지유. 빙판길에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어르신 발길이 뚝 끊긴 거쥬. 이번엔 서울이건 대전이건 집 나간 애들이 안 온디야.”(이금순씨·당진군 순성면) 구제역 및 AI도 전통시장을 질식시켰다. 당진시장에서는 상인 150여명이 노점상을 폐쇄하려는 단속공무원들에게 거친 말을 퍼부었다. “뭐여. 구제역 때문이라면 우리도 먹고살게 해줘야 할 것 아녀. 축산농가야 소·돼지 묻으면 보상받지만 우린 그런 것도 없는 사람 아녀.” 경북 영천시 영천공설시장에서는 구제역이 발생한 지난달 24일부터 5일장이 폐쇄됐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한 마리에 4500~5000원 하던 고등어는 올해 7000원으로, 4마리에 5000원 하던 오징어는 1만원으로 각각 올랐다. 22년째 장사를 한다는 이경례씨(48)는 “어렵다 어렵다 해도 이번 설대목처럼 어려웠던 적은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구제역 때문에) 짐승 키우는 사람은 아예 안 오고, 다른 사람들은 춥다꼬 안 나오고. 그래 손님 보기 힘들어졌다 아입니꺼.”

구제역 여파에 명절 때만 찾아오던 향우회원의 장보기도 사라졌다. 지난해 명절 때는 서울·대구·울산 등에 있는 영천 향우회 1000여명이 시장을 방문, 1인당 20만~30만원어치씩 제수용품을 사갔는데 올해는 그것마저 없어졌다는 것이다.

전북 전주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 중앙시장은 AI 직격탄을 맞았다. 초입부터 늘어선 대여섯 곳의 닭집은 아예 10여일째 문을 닫았다. 노느니 생닭집을 지키고 있다는 박주현씨는 “잊을 만하면 닭병이 찾아온다”면서 진저리를 쳤다. “죙일 앉아 있어도 닭 5마리도 못파는디 인제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야 할랑가.”

우후죽순처럼 출현하는 대형 할인매장과 기업형 슈퍼마켓도 전통시장을 삼키고 있다. 잡화상인 김수철씨는 “골목상권이 살아야 전통시장도 사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재벌 마트들이 벼룩 간을 빼먹것다고 나서는 것은 절대 막아야혀.” 서울 수유시장 상인들도 대형 할인매장 공포에 떨고 있다. 불과 700m 떨어진 삼양시장 자리에 대형 할인점인 롯데마트가 입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건어물 판매상인 이상옥씨는 “대기업이 재래시장과 상생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최소한의 상도의조차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갖가지 악재가 겹치는 바람에 예년 설대목과 견주면 하루 매상 기준으로 40~50%가량 준 것 같다”고 입을 모으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전통시장은 씨가 마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상인들이 신신당부했다. “그래도 시장은 흥정하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사람냄새가 나는 곳입니다. 물건 좋고, 값싼 재래시장 많이 많이 사랑해주세요.

대전/임병술 기자  mbs23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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