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에서 수주를 하기 위해 6개월간 현지에서 머물다가 24일 귀국한 S건설 리비아지사 김정연 관리부장(50)은 수도 트리폴리는 밤마다 전쟁터였다고 회상했다.
김 부장은 "쌀과 야채 같은 비상 식량을 사기 위해 낮에 시장에 갈 때 주변을 살펴보면 경찰서와 관공서가 불에 타서 연기에 그을렸고 찢어진 카다피 초상화가 거리에 나돌아 다녔다"고 현지 사정을 전했다.

김 부장이 현지에 있을 때에는 벵가지 등 지방에서 시위가 격렬했고 트리폴리에서는 시위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하던 때였다. 낮엔 순찰을 돌던 군인과 용병들이 야간에는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하기 때문에 숙소에서 커튼을 치고 머물렀다. 또 주민들이 사재기에 나서는 바람에 물가가 하루 이틀 사이에 두 배로 뛰었다고 한다.

현재 격렬하게 반카다피 시위를 벌이는 리비아인들은 평소에는 대놓고 카다피의 이름조차 꺼낼 수 없었다. 김 부장은 "외부에서 카다피 이름을 거론하면 비밀경찰이 잡아간다.

6개월 동안 카다피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삼오오 모이면 "석유가 많이 나와서 나라는 부자인데, 왜 국민은 가난한지 모르겠다"며 "돈은 날마다 술 파티하는 카다피 가족에게 가는 게 아니냐"며 수군수군 불만을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 기회도 없고 표현의 자유도 없으며 카다피 정권은 국민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쌓인 국민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지에서 한 팀의 구성원이었던 김 부장과 이태성 차장, 전대진 대리는 20일 서울 본사에서 철수 지시를 받았지만 외국으로 나가는 비행기가 수시로 취소되는 바람에 22일에야 리비아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비행기표도 현지 직원이 공항에서 일하는 친지를 통해 구해준 것이다. 대사관에서는 "정부에서 전세기를 띄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리비아 측과 협의가 잘 안 돼 늦어지고 있으니 스스로 여건이 마련되면 탈출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일행은 리비아에서 카이로와 두바이를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김 부장은 "숙소 주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언제 폭도로 돌변해 숙소를 약탈할지 몰라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인천/임병술 기자  mbs23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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