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탈북자) 열에 일고여덟은 여자다. 이 여자들이 남쪽 남자와 결혼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서울 지하철 안에서 탈북 여성의 중매를 주선하겠다는 홍보전단까지 눈에 띌 정도다. 탈북이 낳은 신 결혼 풍속도를 좇았다.

서울의 한 개인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최성화(가명·41) 씨는 어제 밤샘근무를 했다. 점심에 맞선 자리로 나가야 하는데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지난주 토요일이었던 약속을 한 차례 미룬 터라 어쩔 수 없다. 몸을 질질 끌어 화장대 앞에 앉았다.

오늘따라 머리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탈탈거리는 소리를 내는 낡은 드라이기로 앞머리에 볼륨을 넣어본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지 며칠 전 노점에서 4000원 주고 산 머리핀을 꽂아본다. 잠시 거울 속 자신을 응시하던 그녀가 결심을 한 듯 핸드백을 멘다.

함경도에 살던 최씨는 2006년 탈북했다. 결코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올해 5살이 된 딸아이도 그 과정에서 얻었다. 하나원을 나온 뒤 부지런히 간호학원에 다닌 최씨는 그 어렵다는 취업 문도 뚫었다. 이제 남한사회에 적응할 만하자 외로움이 더해갔다. 그러던 지난해 10월, 동향 친구의 소개로 결혼정보회사를 찾았다. 최씨와 같은 탈북 여성과 남한 남성의 만남을 주선하는 업체였다. 여기에 등록된 탈북 여성은 최씨 외에도 400여 명이다.

남성 회원에게는 1년간 7회 만남을 기준으로 250만원의 가입비를 받지만 여성은 무료 가입이었다. 돈 드는 일 아니니 일단 가입이나 해두자는 생각으로 이름을 올렸다. 등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정보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괜찮은 상대가 있는데 한번 만나보겠느냐는 전화였다. 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매번 거절했다. 오늘 약속은 그런 그녀가 가입 5개월 만에 나가는 첫 맞선 자리다.

“빕스(VIPS)로 오라고요? 거기가 어디예요?”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는 길, 주선자로부터 휴대폰 연락을 받은 그녀가 목소리를 높인다. 최씨는 이 동네에 산 지 5년 가까이 됐지만 주선자가 오라는 패밀리레스토랑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음식을 파는 곳인지도 모른다.

“억척스러운 생활력으로 인기”
최씨의 ‘맞선남’ 박태성(가명·47) 씨의 직업은 부동산경매업자다. 근무시간이 유동적인 터라 별문제는 되지 않지만 지난주에 만나기로 한 약속이 미뤄져 영 꺼림칙했다. 그는 2년 전 이혼했다. 8살 난 아들은 전 부인이 데려갔다. 자연스레 재혼을 생각했다. 한 번 실패를 맛본 터라 이왕이면 내조 잘하는 여자였으면 했다. 경제력도 어느 정도 있고, 딸린 애도 없는 처지니 재혼이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재혼 상대 찾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인터넷 검색을 통해 탈북 여성 결혼정보업체를 알게 됐다. 생활력 강하고 내조를 잘한다면야 탈북 여성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길로 관련업체를 찾아 회원 등록을 마쳤다. 최씨는 그의 세 번째 ‘맞선녀’다. 이전 두 명의 맞선녀는 ‘여장부’ 스타일이었다. 남한사회에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조신한 신붓감을 찾는 박씨에게는 어쩐지 버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 맞선녀는 꼭 얌전한 스타일로 소개해달라고 업체에 부탁해뒀다.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최씨를 본 그의 눈이 순간 반짝인다. 어깨까지 오는 곱슬머리에 무릎을 덮는 플레어스커트를 입은 최씨가 상기된 표정으로 들어온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주선자에게 받은 문자메시지로 그녀의 나이·직업·출신 정보를 알았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최씨는 목이 타는 듯 물을 연거푸 들이켰다. 웃고 있었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벗겨진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흐르는 땀이 보인다.

최근 탈북 여성과 남한 남성의 결혼을 주선하는 결혼정보업체가 크게 늘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업체 5~6곳이 성업 중이다. 미등록 업체까지 포함하면 10여 곳으로 추정된다. 운영자 역시 대개 탈북자다.

2006년부터 ‘남남북녀 결혼정보회사’를 운영해온 홍승우 대표는 “남성 회원 가입 수요가 매년 100%씩 증가한다”고 말했다. 이곳을 찾는 남성의 연령대는 30대 중반에서 40대 후반이 가장 많다. 20대 후반 회원도 간혹 있다고 했다. 홍 대표는 “남성 대부분은 탈북 여성이 가정적이고 생활력이 강하겠다는 기대감으로 오는 편”이라면서도 “‘남남북녀’라는 말도 있듯 북한 여자가 더 아름다울 거라는 막연한 호기심으로 회원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에서 작은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는 안기훈(가명·37) 씨는 노총각 딱지를 떼려고 한 업체에 가입했다. 처음에는 남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업체 몇 군데를 알아봤다. 하지만 고졸이라며 가입을 거부당했단다.
“그나마 받아준다는 데도 수천만원에 달하는 터무니없는 가입비를 요구해 포기했어요.”

“돈으로 사는 결혼 아니다”
동남아시아 출신 여성을 소개해준다는 국제결혼업체도 약 1000만원의 가입비가 든다고 했다. 그러다 탈북 여성을 소개해준다는 업체를 찾았다. 그는 지난해 5월 가입 이후 지금까지 탈북 여성 7명을 소개받았다.

안씨는 “북한 여성은 남한과 확실히 다르다”고 전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때가 덜 묻고 더 순수하다”고 했다. 그는 지금껏 인연을 찾지 못한 이유를 두고 “결혼 후 부모님을 모시고 살 계획인데 이 점을 부담스러워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농촌 총각과 결혼하는 외국인 여성과는 달리 탈북 여성들은 공무원이나 회사원 등 안정적인 직장의 남자를 선호했다. 한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탈북 여성과 재혼을 준비 중인 김재성(가명·46) 씨는 “생각보다 조건이 까다로워 놀랐다”면서 “내 소득 수준을 비롯해 모든 신상정보를 다 보내고 나서야 가입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탈북 여성이라도 엄연히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기 때문에 다른 외국인과 달리 국적 취득이 결혼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면서 “간혹 돈만 내면 외국인 신부 데려오듯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실상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탈북 여성들이 꿈꾸는 이상형이 남한 여성만큼 까다롭지는 않지만 그 나름대로 기준은 있다고 했다. 그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탈북한 여성들에게 좋은 인연을 만들어주려면 회원 검증작업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집계된 탈북자 수는 모두 2만400여 명(지난해 12월 기준). 그중 여성 비율이 70%로 압도적이다. 1989년 7%에 불과했던 탈북 여성 비율은 꾸준히 늘어 2007~2008년에는 78%까지 증가했다. 특히 젊은 층이 많아 지난해 8월 입국자를 기준으로 보면 20~39세 여성이 60% 가까이 된다. 이들이 남한 남성과 결혼을 꿈꾸는 이유는 남한사회에 빨리 정착하고 싶어서다. 남한 배우자만큼 좋은 선생님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북 여성들의 결혼생활이 꼭 순탄하지만은 않다. 북한이탈주민지원단체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새조위)’ 상담지원센터에 따르면 탈북 여성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취업과 결혼이란다. 신미녀 새조위 대표는 “혼자 남한에 온 탈북 여성 비율이 80%에 달한다”면서 “대부분 외로움 때문에 남한 남성에게 쉽게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남한사회를 제대로 알기 전, 남성에게만 의지하다 피해를 본 사례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얼마 전에 상담을 신청한 최선희(가명·42) 씨는 친구 소개로 만난 남한 남성에게 운전연수를 받았다고 했다. 예순을 훨씬 넘긴 그 남자는 이제 막 면허를 땄다는 그녀에게 먼저 강습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녀는 남자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의 차로 연습을 하던 최씨는 서툰 운전 탓에 실수로 차문을 긁었다. 남자는 당황하는 그녀를 달래며 “괜찮다. 놀란 듯하니 잠깐 쉬었다 가자”고 말했다.

남자의 ‘쉬었다 가자’를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자’로 알아들은 선희 씨는 남자가 한 모텔로 데려갔을 때 영문을 몰랐다. 성관계를 요구하는 그를 뿌리치고 나온 그녀는 며칠 뒤 남자로부터 “차 수리비로 200만원이 나왔으니 지불하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최씨는 신 대표에게 “자신의 차로 마음껏 연습해도 된다기에 고맙게만 생각했다”면서 “수리비를 내야 하는 거냐”고 상담을 요청해왔다.

매 기수 하나원 교육을 나간다는 신 대표는 “탈북자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온 아이와 같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소소한 교통법규에서 법적 소송까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단계에서 남한 남자만 만나면 모조리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라고 가르친다.
신 대표는 “하나원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교육이 취업에 집중돼 정작 중요한 결혼·가정생활 교육은 간과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남남북녀 커플 중 재혼 가정이 많은 점도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하나원, 결혼 교육 간과한다”
신 대표의 말처럼 남남북녀 커플 중 절반 이상이 재혼 가정이다. 남남북녀 결혼정보회사의 경우에도 남성 회원 중 40% 정도가 재혼 희망자다. 재혼 비율이 초혼보다 높은 업체도 여럿 있다. 재혼이 어려운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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