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산교회(김태균 목사)는 그 아프고도 자랑스러운 유산을 간직한 교회이다. 마을 입구를 장식한 ‘순교자의 길’ 표지석을 지나 예배당 입구에 들어서면 순교자들을 합장한 거대한 봉분과 순교 기념비, 그리고 그들을 추모하는 십자가 돌탑이 눈에 뜨인다.
본당 옆에 마련된 순교기념관에는 전쟁 당시의 기록과 유물 등 갖가지 자료들이 전시되어있고, 교회당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가로 내려가보면 순교자들의 흔적과 함께 기념탑이 세워져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58년 전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되살아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한국기독교 유적지 답사코스가 정해질 때마다 염산교회가 빠지지 않고 포함되는 이유는 이처럼 풍부한 순교유산과 그것을 정성스레 보존해온 교우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당시 염산교회에는 독립군 출신의 김방호 목사가 담임하고 있었다. 영광일대가 공산군의 손에 넘어가고, 교회당이 공산군의 사무실로 징발된 후에도 김 목사는 교우들과 마을에 남아 초대교회 카타콤처럼 비밀리에 예배를 드리며 믿음을 지켜왔다.
사건은 9·28 수복 후 북진하는 국방군의 환영대회를 염산교회 청년회가 앞장서 주도하면서 비롯됐다. 아직 후퇴하지 않고 남아있던 공산군들과 좌익세력이 이에 대한 보복을 자행하면서 엄청난 살육이 이어졌다.
10월 7일 환영대회에 앞장섰던 기삼도 노용길 등 청년들을 처형하고, 교회당을 불에 태운 것이 신호탄이었다. 이튿날부터는 염산교회 교인들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가족단위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마을 앞 설도포구의 수문통에는 무려 77명이나 되는 교인들이 수장되고 말았다.
초대교역자였던 이신 장로, 2대 교역자였던 원창권 목사, 3대 교역자였던 김방호 목사 모두가 가족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전 교인의 2/3가 희생된 기막힌 사건이었다. 이들은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찬송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다고 전해진다.
전쟁이 끝난 후 홀로 살아남은 김방호 목사의 차남 김익 전도사가 부임하여 염산교회의 명맥이 다시 이어지기 시작한다. 김 전도사는 학살의 주범이던 좌익인사들을 찾아다니며 용서와 사랑의 마음을 전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도 남아있다.
폐허가 된 터전에서 다시 일어선 염산교회는 예배당을 다시 세우고,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며, 성경구락부 개설 등 교육사업에 힘쓰는 등 재건에 매진했다. 성경구락부는 이후 염산중학교 설립의 모태가 된다.
이후 반 백년의 역사가 흘렀지만 염산교회의 간직한 믿음의 전통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순교의 기억은 더욱 생생해지는 듯하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순례객들을 맞으며 염산교회 순교의 역사를 차근차근 들려주는 김태균 목사와 최종천 장로. 이들은 10년 전부터 활발하게 전개되어온 염산교회 순교기념사업의 주역들이기도 한다.
순교기념공원 조성, 자료전시관 개관, <77인의 순교사> 발간, 영상물 DVD 제작 등 큼직큼직한 사업들을 마무리했고, 이제는 집회실 전시실 시청각실 전망대 등 다양한 시설들을 갖춘 대규모 순교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는 중이다.
기독교가 순수성을 잃고 권력과 물질에 오염되고 있으며, 교회가 민족과 사회를 위해 희생할 줄 모른다는 비난을 받는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염산교회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할 말이 많은듯하다.
“한국교회 부흥과 성장의 이면에는 지금도 힘차게 흐르고 있는 순교자들의 피가 자리하고 있다”며 김태균 목사는 “순교는 함께 부르는 이름이어야 하고, 영광이며 노래여야 한다. 그 길이 더욱 영광스럽도록 믿음의 후예들이 뒤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설명>>염산교회를 꾸미는 것은 화려한 외양이 아니다. 선배들이 물려준 순교의 유산, 그것만으로도 염산교회는 부유하다.
이주옥 기자 free071123@nav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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