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비가 왔는데 배수장 펌프가 제대로 가동 안돼 피해를 키웠습니다. 전형적인 인재(人災)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전날 새벽에 내린 호우로 주택 40여채 등 9천여㎡와 차량 90여대가 침수된 대구 북구 노곡동 일대 주민들은 18일 배수시설 가동이 제대로 안돼 피해가 커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카센터를 운영하는 권중근(40)씨는 "사람 가슴까지 찰 정도로 집과 가게에 물이 들어왔는데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며 "배수장의 펌프가 2개 있는데 1개는 아예 가동도 안됐고 나머지 1개도 절반만 가동됐다더라"고 관리 당국을 질타했다.

주민들은 이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물에 잠겼던 집안 가재도구와 전자제품 등을 바깥에 내놓고 말리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씻고 닦았지만 "해도해도 흙더미가 쏟아진다"고 한탄했다.

주민들은 갑작스런 호우에 놀라고 집안이 모두 물에 잠겨 어처구니가 없어하면서 아직도 지하에 들어찬 물을 빼내지 못하고 잠긴 물건들을 보고 발만 동동거리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는 300여ｍ의 도로 양옆이 저지대인 탓에 대부분 침수됐고 주민들은 살림살이 도구와 냉장고 등을 끄집어내 물로 씻고 임시로 친 천막 등에서 옷가지를 말리는 모습이었다.

집 앞 곳곳엔 쓰레기를 담은 마댓자루가 더미를 이뤘고 물에 잠겼던 승용차들은 아직도 운전석 주변에 흙탕물자국이 뚜렷했다.

행정기관에서는 소독장비를 이용해 마을 이곳저곳에서 소독작업을 펼치고 있었다.
주민 김해록(49.여)씨는 "어제 새벽 차량이 떠내려오면서 '쿵쾅 쿵쾅'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방문을 여니 갑자기 물이 쏟아져 들어와 황급히 속옷차림인 아이들을 깨워 옥상으로 대피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씨는 "가재도구와 책, TV 등 세간이 모두 물에 잠겨 쓸게 하나도 없다.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해 행정기관에서 해결해 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서미자(55.여)씨는 "어제 새벽 물소리를 듣고 112와 119로 신고하고 밖으로 나가려 했으나 물이 들어와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창문을 깨서 탈출해야 했다"며 "대문에 매달려 이웃주민을 불러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조명숙(56.여)씨는 "어제 현장에 도착해보니 마을이 온통 흙탕물 천지이고 가재도구가 진흙에 잠겨 주민들이 복구작업에 손도 못대고 있었다"고 했다.

주민들은 "2003년 태풍 '매미'가 왔을 때도 침수피해가 있었지만 그때는 금호강 물이 역류한 탓이고 이번에는 배수가 잘 안돼 피해가 커졌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시는 "이번 침수피해는 호우로 인해 공사 중인 노곡동 배수펌프장 수로박스에 설치한 제진기에 나뭇가지 등 생활쓰레기가 걸려 일어났다"며 "피해발생 원인에 대해 사고조사반을 가동, 면밀한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대구 북구청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사고수습과 구호활동으로 응급구호물자세트를 보내고 침수피해 주민들에 대해 위생, 방역을 비롯해 전기, 가스, 수도의 일제점검 등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직원 100여명을 현장에 투입해 주민들이 임시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조치하는 한편, 피해주민의 심리안정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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