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동거 원하는 노인 29% 불과..자발적 독거 증가세

"며느리와 같이 살면 불편, 손자 키우는 것도 힘들어"

'당당한' 홀몸노인 되려면 건강과 경제력 뒷받침돼야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위치한 한 실버타운.

이 실버타운 안에 있는 휘트니스센터에서는 14일 할머니 10여명이 강사의 구령에 맞춰 허리강화 체조를 하고 있었다.

복도 건너 탁구장에서는 똑딱거리는 탁구공 소리와 웃음소리가 절묘한 화음을 이루고, 물리치료실에서는 허리가 불편한 어르신이 허리 찜질을 받고 있었다.

병원과 물리치료실, 수영장, 골프연습장, 영화관, 찜질방, 게이트볼 경기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 이곳에는 노인 200가구 이상이 입주해 있다.

입주민 중 60%는 홀몸노인들.

부양 능력과 의지가 있는 자녀가 있지만, 자녀와 함께 살기보다 혼자 편하게 노년을 보내고자 실버타운을 선택한 이들이 적지 않다.

김도준(79) 할아버지도 그 중 한 명이다.

김 할아버지는 아내와 사별한 직후인 올해 1월 이곳에 입주했다.

그는 "아들 1명과 딸 2명이 서울에 살고 있지만, 자식들한테 부담 주기 싫어 이곳에 들어왔다"면서 "내가 수영을 좋아하는데 수영장이 건물 내에 있고 가사 일도 알아서 다 해주니까 너무 편하다"고 말했다.

이 실버타운을 운영하는 백마씨앤엘㈜의 한정수 대리는 "예전에는 늙고 힘없는 어르신들이 실버타운에 들어온다고 생각했다면, 요즘에는 노후를 건강하게 보내시려는 분들이 찾는 곳으로 시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 늘어나는 '자발적' 홀몸노인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가족과 헤어져 힘들게 살아가는 홀몸노인도 많지만 주위에 자녀가 있어도 스스로 '독거(獨居)'를 선택하는 홀몸노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2남1녀를 둔 김수연(68.가명) 할머니는 자식들을 차례로 결혼시키면서 모두 분가시키고 홀로 살고 있다.

김 할머니는 "요즘 시어머니 모시고 살겠다는 며느리들이 어디 있느냐"며 "혼자 살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요즘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20년 전 장남이 결혼했을 때 맏며느리와 같이 산 적이 있지만 나 때문에 부부싸움이 잦은 것을 보고 분가시켜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했다"면서 "내 친구들 중에서도 자식 며느리와 한 집에 사는 친구는 1명도 없다"고 말했다.

최현자(70.가명) 할머니도 2002년 남편과 사별한 뒤 서울 정릉동 아파트에서 홀로 살고 있다.

서울에 아들 3형제가 살고 있지만 며느리들 눈치 보며 마음 상하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 게 편해서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아들들이 '모시고 살겠다'고 나섰지만 거절했다.

다만, 일산에 있는 집을 처분하고 아들 2명이 사는 정릉동으로 옮겨 언제라도 왕래할 수 있도록 했다.

최 할머니는 "같이 살면 손자, 손녀를 봐줘야 할 텐데 그렇게 하기엔 너무 힘에 부치기도 하고 교육방식을 놓고 며느리와 괜한 충돌만 만들 수 있다"면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내 생활을 즐기면서 혼자 사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는 고양시에 있던 집이 개발로 수용되면서 받은 보상금 7억원으로 아파트 전세를 얻었으며, 지금은 학원 안전요원으로 일하며 한달에 40만원 정도 벌고 있다.

최 할머니는 "아들들이 근처에 살아 왕래할 수 있으니 굳이 같이 살 필요를 못 느낀다"면서 "활동에 제약이 있을 정도로 몸이 안 좋아질 때까지는 아들 집으로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금껏 살아온 고향을 떠나기 싫어 혼자 사는 경우도 있다.

광주에서 평생을 살아온 조희만(69.가명) 할아버지는 5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서울에 사는 아들 집으로 들어왔지만 몇 개월 만에 다시 광주로 돌아와 홀로 살고 있다.

조 할아버지는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사는 것도 좋았지만 친구가 없어 너무 무료했다"면서 "혼자 이것저것 챙기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온 곳에서 사는 게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