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값이 왜 이렇게 치솟는지 대형 유통업체에 물어봐라"

"여 봐, 곯았어. 죄다."

담배를 피워 문 채 밭고랑을 돌던 최윤지(74)씨는 연신 혀를 끌끌 찼다. 29일 오전 강원 춘천시 서면 현암리에서 만난 최씨는 "초복에 파종해 8월15일쯤 밭에 옮겨 심었는데 이 모양"이라며 "이맘 때면 속이 꽉 차 올라와야 하는데, 결구(속이 빈 배추)가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군데군데 속썩음병에 걸려 누렇게 말라버린 배추를 뽑아내던 그는 "무지하게 날이 덥더니, 비까지 징그럽게 쏟아지는 바람에 (배추가) 제대로 자랄 새가 없었다"며 "10월 중순이면 출하하곤 했는데, 올해엔 보름은 더 지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 춘천시 서면 일대는 이른바 '엇갈이' 배추의 주산지로 통한다. 정재각 강원도 유통원예과 계장은 "고랭지 배추 출하가 끝나고, 남쪽지방에서 본격적으로 김장용 배추가 출하되기 전까지 먹는 게 엇갈이"라며 "봄감자를 거둔 뒤 통상 8월 중순에 엇갈이를 심는데, 서면 일대에만 배추밭이 약 40만평 된다"고 말했다.

배추 발육이 더디면서 수확량도 큰 폭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서면 신매리에서 농약을 치던 이동철(43)씨는 대뜸 배추 밑둥을 들춰 보였다. 그는 "배추는 뿌리가 튼튼한 식물이 아닌데, 비가 너무 내려 뿌리가 썩어서 배추 태반이 넘어갔다"며 "보통 엇갈이 배추는 300평에서 3000포기가량이 나오는데, 올해는 그 절반 수준도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치솟은 배추값이 쉬 내려오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배추 3포기를 담은 1망에 4만원가량이 요즘 시세다. 농민들의 호주머니도 두툼해졌을까? 2000평 남짓한 밭에서 이틀째 김을 매느라 분주한 유복순(75)씨는 "(밭떼기로 팔면) 보통 1평에 5천원가량 쳐줬는데, 올해는 7천원을 받았다"며 "배추값이 오르긴 오른 모양"이라고 했다.

이동철씨는 "지난해도 그렇고 지지난해도 그렇고, 한 3년 배추농사를 망쳤다"며 조금 다른 얘기를 했다. 서울로 실어 올리는 운송비가 5t 트럭 기준으로 30만원인데, 지난해엔 배추값이 그마저도 안 돼 밭을 다 갈아엎었고, 그래서 올해엔 아예 배추 농사를 짓지 않은 이들도 꽤 된다고 했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배추값이 낮았다. 그때 대형 유통업체들이 저장해 놓은 배추가 요즘 나오고 있는 거다. 배추값이 왜 이렇게 치솟았는지는 그 사람들한테 물어봐라." 이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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