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북고위급 군사회담 개최 날짜로 4월14일을 제안한 것은 남북대화를 후계자 김정은의 권력승계에 이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은 이날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고(故)김일성 주석 출생 100주년인 4월15일 하루 전 남북고위급 군사회담을 열자고 우리측에 제안했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15일은 '태양절'이라고 불리며 북한은 이 날을 국가공휴일로 정해 경축 분위기를 조성, 북한 정권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심을 높이고 내부 결속을 다져왔다. 특히 김 주석 출생 100년을 기념하는 이번 '태양절'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혈통 계승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행사로 채워질 전망이다.

북한은 4월14일 남북고위급 군사회담을 통해 남북대화의 첫 단추를 연 '공적'을 후계자 김정은에게 돌리고 김 주석의 생일 날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해 권력세습을 공고히 하려고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남성욱 소장은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아직도 3대세습에 대한 분위기가 100%완성됐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김정은은 업적을 먼저 쌓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북한이 다른 회담도 아닌 군 당국간 고위급 회담을 '3대 세습' 완성의 '디데이(D-day)'가 될 '태양절' 전야 이벤트로 삼으려 한 것은 김정은의 군 장악 문제를 어느 정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남북 대화에 앞서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사과가 이뤄져야한다는 우리측 요구도 있었지만 군사회담은 북한이 먼저 제안했고, 남북 당국간 군사회담이야말로 군에 대한 김정은의 지도력을 과시할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남북고위급 군사회담을 기점으로 적십자회담, 금강산·개성공단 회담이 연이어 열린다면 남측의 지원을 얻어내고 6자회담 재개에 더 다가가 체제안정과 경제난 극복의 공을 한꺼번에 김정은에게 돌릴 수도 있게 된다.

북한이 남북대화를 '3대 세습'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면 향후 진행될 남북고위급 군사회담이나 남북적십자회담에도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정부는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 확인'을 관계개선의 기준으로 내세운다는 방침이다.

이종주 통일부 부대변인은 9일 북한의 남북적십자회담 개최 제안에 동의한다는 정부 입장을 밝히면서 "천안함·연평도 문제,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확인이 이뤄져야 한다는 기존 입장이 변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우리측이 북한의 제안을 거부하고 5월 이후 남북고위급 군사회담을 열자고 역제의 한 것도 남북대화에 임하는 북측의 진정성을 의심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향후 남북대화의 성패는 북한이 정치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성실하게 대화에 임해 어느 정도의 진정성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