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돌아다녀 봐도 아파트 전세는 찾을 수가 없어요. 어제 봤던 다세대주택으로 계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종암동의 한 공인중개업소를 찾은 김모(36)씨는 굳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최근 살던 아파트 전셋값이 크게 올라 이사 갈 집을 찾던 터였다. 쌀쌀한 날씨 속에 중개업소를 찾은 지 20여일이 지나면서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김씨가 살던 성북구 정릉동의 방 3개짜리 아파트(85㎡)는 최근 전셋값이 1억2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 이상으로 뛰었다. 부인 및 6세 아들과 함께 살던 김씨는 이제 비슷한 크기지만 방이 2개밖에 없는 종암동의 다세대주택으로 옮기게 됐다. 1억2000만원에 가능한 집 중 그나마 가장 나은 곳이었다.

지난해 하반기(7~12월)부터 시작된 전세난이 봄 이사(계약) 수요와 맞물리면서 가중되고 있다.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서민·중산층은 아파트에서 인근 다세대주택으로, 서울 도심에서 외곽으로, 서울·경기 접경지역으로 정든 집을 떠나 새 전셋집을 찾고 있다. 이른바 ‘전세난민’으로 전락한 것이다. 서울과 성남 분당, 안양 평촌 등지에서 전세가 더 싼 외곽으로 옮기는 전세난민들로 인해 수도권 위성도시 전세시장도 들끓고 있다.

이날 경기 용인시 동백동의 한 중개업소에도 전세를 찾는 손님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격이 오르고 있는 데다 공급물량이 턱없이 부족해 실제 계약이 이뤄지는 것은 1~2건에 그치고 있다.

중개업소 대표 최모 공인중개사는 “서울이나 분당에서 전세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 최근 한 달 사이에 전셋값이 20%는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용인뿐만 아니라 안양 평촌, 고양 일산 지역도 남아 돌던 전세 물량이 최근 들어 동나면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전셋값 오름세가 지속되면서 서울 서초구와 중구, 은평구 등 일부 지역에서는 뛰어오르는 전셋값을 감당하기 힘들어 아예 매매로 발길을 돌리는 수요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성북구 길음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에는 워낙 전세 물건이 부족하다 보니 계약서 쓰는 자리에서도 갑자기 집주인이 전셋값을 500만~1000만원씩 올리는 경우가 있었다”며 “전셋값이 오르자 이참에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자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KB국민은행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용인 수지구의 전년 말 대비 전셋값 상승률은 4.4%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서울에 이어 이제는 경기 지역의 전셋값도 치솟고 있는 것이다.